오는 팔월 십오일 광복 팔십일 주년을 앞두고, 일제강점기 내내 애타게 광복을 염원했던 작가 심훈의 친필 원고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작 심훈은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구십 년 만에 원고 오십구 점이 빛을 되찾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돌아온 자료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시 그날이 오면의 친필 원고입니다. 천구백삼십 년 삼월 일일, 스물아홉 살의 조선 청년 심훈은 십일 년 전 삼일절의 함성을 기리며, 그날 곧 광복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출 것이라고 벅찬 마음을 노래했습니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과 해방을 향한 간절함이 손 글씨에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끝내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일제는 원고 전체에 빨간 테두리를 두르고 한 줄 한 줄 빨간 밑줄을 그은 뒤, 위아래로 삭제를 뜻하는 빨간 도장을 찍었습니다. 심지어 삭제한 취지조차 기재하지 말라는 주의 문구까지 남겼습니다. 원고에는 우리 말과 글을 억눌렀던 식민 통치의 검열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소중한 원고들은 심훈이 숨진 천구백삼십육 년에 태어난 셋째 아들 고 심재호 씨가 평생을 바쳐 모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아들이 오랜 세월 흩어진 유고를 지키고 모아 온 끝에, 해방 팔십일 년이 지난 지금 원고들이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자료에는 심훈의 마지막 작품도 포함됐습니다. 천구백삼십육 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듣고, 심훈은 원고 뒷면에 즉흥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써 내려갔습니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이 깊은 밤 전승의 방울 소리에 터질 듯하다는 구절은, 식민지 백성의 벅찬 감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식민지 농촌의 현실을 담아낸 저항소설 상록수의 친필 원고 전체본이 함께 돌아왔습니다. 또한 삼일 만세운동 당시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던 심훈이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린 글월도 포함돼,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였던 그의 삶을 오롯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심훈의 친필 원고는 내년 개관을 앞둔 국립한국문학관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심훈의 원고를 비롯해 지금까지 수집한 약 십이만 점의 문학 자료를 앞으로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돌아온 이번 원고들은 우리 문학사와 독립운동사를 잇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